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 이번 에피소드 " 59. 아마노  vs  코리아노 "를 시작하며


 이번 에피소드의 원제목은 '59. Co-workers 함께 일하는 이들' 이었으나, 너무 포괄적인 제목이라 특정 내용 부분에서 그 의미를 따와 ' 아마노 vs 코리아노(코리언 아마노)'로 제목지어봤다. 이 번 편은 공장에서 함께 일 하는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공장일을 다시 한번 소개하는 에피소드로 약 3월 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현재까지의 일들을 순차적으로 담고 있으며, 내가 일하고 있는 계란 공장 Golden Egg Farms에서 벌어진 일들이며, 주로 나와 함께 일 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 다른 편에서도 꽤나 자세하게 다뤘으나 이번 편에서는 사람이야기가 주가 되며 그러다보니 또 사람 욕을 안할래야 안 할수가 없는 편이 되어버렸다.


 다만, 그간 참 이런저런 일이 있는 동안 내 스스로 왠만하면 블로그에 다른이의 욕을 쓰는 것에 대한 반성과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끝내 얻은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냥 욕하자 정도. 사실 나 이외에도 똑같은 것을 두고 똑같은 이들을 향해 욕을 하는 다른이들을 보며 결코 내가 과대망상적인 피해의식으로 그 들을 욕하는게 아니라는 결론 하나는 얻게 되었으니 이 블로그의 초기 목적인 기록보존을 위해서라도 욕할게 있으면 눈치보지 않고 하는 그런 포스팅을 지속하기로 했으며 대신에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쳐지진 않았는지, 나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적어도 자기검열의 시간을 가진 후에 올리기로 했다. 그럼에도 자기검열이라는거 자체가 이미 완전 주관적인 의미를 가지는 말이기 때문에 결국 별의미 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 감정을 다스리고 아주 조금은 이성적으로 상황판단을 한 후에 글을 적기 때문에 그 시간은 유의미 하다고 생각된다. 


 이 긴 썰의 간단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욕 먹는 새끼들은 다 욕 먹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욕 하자 "


 그럼 이번 편을 시작 해 본다.




 [ 사진 위 : 공장 내부 모습 ] 

 

 59. 아마노  vs  코리아노


 나는 이 글의 이야기 시작점이었던 3월에도 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10월에도 프리맨틀 근처 Palmyra에 있는 Golden Egg Farms 에서 일하고 있다. ( 혹시 이 글 보고 계란 공장으로 쓸 데 없는 발걸음을 할 분들을 위해 잠깐 사족 달아봅니다. 정말 오지마세요. 여긴 인맥으로 뽑는 곳입니다. 저번 에피소드에 공장 얘기 적었을 때 그 거 보고 참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데 왜 제 말을 안 믿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력서 안 받는 공장입니다. 무조건 인맥으로만 구합니다. ) 


 이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게 올해 시작부터였으니 꽤 긴 시간을 일했다. 그러다보니 참 많은 이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봤는데 전에 공장일 포스팅 때 ([여행일지/호주 워킹홀리데이] - [호주 워킹 홀리데이] 50. Golden Egg Farm)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일하는 Pulp Packing 파트에는 3명의 인원이 필요로 한다. 아주 간단히 나누어 기계 앞에서서 계란 액체를 뽑아내는 사람, 중간에 박스를 접고 포장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스를 트롤리라 부르는 쇠로된 바퀴달린 큰 선반에 차곡차곡 쌓는 사람. 



 [ 사진 위 : 트롤리라고 부르는 바퀴달린 선반, 공장에 따라서는 비슷하게 생긴, 혹은 비슷한 용도의 프레임이란느 것도 있다. 사실 트롤리라는 말은 굉장히 광범위 하게 쓰인다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도 이 곳 호주에서는 트롤리라고 부른다 ]




 [ 사진 위 : 벽쪽으로 계란 액체가 나오는 기계, 그리고 그 옆에 박스를 놓고 박스를 접고 포장하는 사람, 그리고 지금 내가 사진을 찍는 위치에 한 사람이 서서 포장 되어 나온 박스를 트롤리나, 팔레트 위에 쌓는다. 3인 1조 팀웍이 중요한 작업]




[ 사진 위 : 이 기계가 계란 액체를 뽑아 내는 기계, 계속 조작해줘야 한다. ]



 [ 사진 위 : 저 기계는  Cutting Edge 라는 계란 흰자 액체만 모아서 나오는 걸 뽑아내고 자동으로 포장하는 기계 ]


 계란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1월부터 약 3월까지는 나와, 호주사람 2명 존, 토니 이렇게 3명이서 일을 했다.

 토니는 곱추에 약간 어리버리한 아저씬데 어리버리하고 천진난만한 모습 때문에 오히려 동생처럼 느껴지는 이다. 그래도 공장 짬밥이 되는지라 내가 모르는 것은 언제든 토니에게 물어보면 토니는 모든지 다 알고 있었다. 


 존은 84년생의 건장한 청년인데, 제법 호남형. 내가 일을 시작할 당시 공장에서 일한지 10개월 정도 됐다고 했는데 사실 슈퍼바이저로 당장 시작해도 상관없을정도로 공장의 모든 일들을 꿰뚫고 있었으며 일도 정말 잘한다. 아마 내가 본 오지(Aussie, 호주인을 일컷는 말)중에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3명이서 일을 하고 있던 3월까지는 별일도 없고 그냥저냥 흘러가는 시간들이었다. 일도 쉬운편이고 말 그대로 평화로운 나날들. 그런데 갑자기 변동이 생기게 되었다. 다름 아닌 바로 옆 파트 Bumping Part에서 일하던 루이가 일을 그만 둬 버린 것이다. 범핑 파트는 계란 액체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인 계란을 깨는 파트였는데 범핑파트가 안돌면 계란 액체가 없으니 계란 액체를 팩킹(포장)하는 우리 파트도 멈춰야 하는 것. 서로 굉장히 밀접한 파트라고 할 수 있다.



[ 사진 위 : 왼쪽) 트롤리에 계란 판들이 쌓여있다. 오른쪽) 팔레트에 계란판들을 쌓아놨다 
 흰색 계란판 한 팔레트에 저만큼 쌓여있는걸 약 10개 정도 아침에 출근하면 뿌신다. 계란 액체를 만들기 위해. 범핑 파트에서 하는 일은 저런 계란들을 뿌셔서 액체로 만드는 일 ]


 범핑 파트의 책임자는 이 곳에서 20년넘게 일한 베리 였다.  베리는 아주 건장한 호주 백인 할아버진데 (60살을 훌쩍 넘음 ) 나중에 친해지면서 얘기해보니 뉴질랜드 사람이었다. 뭐 사실 호주 안에서 뉴질랜드 사람 보기란 아마 서울에서 부산사람이나 전라도 사람 보는 것 만큼 쉬운일이 아닐까 싶다. 뭐랄까 다른 나라라는 의미보다는 같은 나라 다른 지방의 느낌? 


 어쨌든 호주사람을 오지라고 부르듯, 뉴질랜드사람들은 키위 Kiwi라고 부른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어쨌든 베리에겐 아마도 금방 일을 그만두지 않고 오래 일할 만한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고 보는데 당시에 그런 사람은 딱 한명 밖에 없었다. 조금 어리버리하긴 하지만 우직하고 성실한 토니. 그렇게 루이가 그만둔 자리는 우리파트의 토니가 범핑 파트로 가면서 우리 파트의 자리는 비워지게 되었다.  우리 파트의 빈자리는 슈퍼바이저인 Snezana (스네자나라고 빨리 부르는게 원래 맞는 발음이나 그냥 스잔나 라고 부르면 됨)가 와서 깔짝 거리거나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이들을 하루하루 바꿔가며 넣어서 채웠다. 


 이 때가 아마 이 공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의지할 사람 한명도 없는대다가 존은 거의 슈퍼바이저랑 동급인듯,  굳은 일은 다 나에게 떠넘겼다. 다른 파트에서 온 이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게다가 대개 필리핀 아줌마들이 와서 힘안쓰는 박스 접는 일 같은 걸 했기 때문에 힘쓰는 일은 온 통 내 몫, 특히 제일 짜증 났던건 트롤리에 박스를 채워넣으면 트롤리를 지하 냉동창고로 옮겨야 하는데 지하와 지상을 몇번씩이나 혼자 왔다갔다 하면서 트롤리를 옮기는건 고역이었다. 정말 완전 힘든 나날들. 한국 사람도 없고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때 쯤 애플이 드디어 이 공장으로 들어 오게 되었다. 매일 매일 팩토리 매니저 (공장장 정도 되려나)인 제프에게 찾아가 여자 파트 일 안필요하냐고 물었는데 어느날 드디어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듣고 드디어 애플이 일을 시작했다. 무려 애플이 4개월을 놀고 난 후였다. 정말 지옥 같은 날들의 종지부. 


 그리고 이때 좀 짜증나는 일이 있었는데 여자 자리가 하나 또 났는데 그 때 당시에 쥴리라는 한국여자애가 다니고 있었는데 쥴리가 AR을 꽂아주고 나간 것이었다. ( AR은 이 포스팅  [여행일지/호주 워킹홀리데이] - [호주 워킹 홀리데이] 46. 퍼스, 비열한 거리  참조 ) 제니누나네 살던 그 얄미운 KD녀석 여자친구. 뭐 사실 AR캐릭터야 불보듯 뻔한 캐릭터 AR이 공장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 모두가 똑같이 했던 얘기는 ' 한달도 안되서 그만두겠네 "였다. 아니나 다를까 AR은 들어와서 꼴통짓하고 어느날 갑자기 그만둔다는 소리도 안하고 그냥 그만둬버렸다. 이때부터 제프가 빡이 쳐서 여자 파트에 다른 한국여자를 절대 안쓰게 된다. 현재 10월까지도 유일한 한국 워홀러 여자는 애플뿐. 원래 이 공장은 한국사람이 꽉 잡고 있어서 워홀러 일자린 모두 한국사람이었는데 대만 여자 한명이 들어와 자릴 차지 함. 어쨌든 AR덕분에 피같은 퍼스 공장일자리 하나가 날라갔다.  (이쯤에서 모두  AR에게 쌍욕 한번. ) 그냥 한심할 따름. 욕먹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 맘때쯤, 내가 말한 남자 일자리가 생겼다. 아무래도 우리파트에 한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제프가 나에게 와서 사람을 한명 데리고 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난 아시다시피 한국사람을 꽂아줬는데 그렇게 절실하다고 애원하더니 더 시급이 높은 좋은 공장에 취직이 되자 옮겨버린다.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 때부터 드디어 깨달았다. 왜 모두가 아는 이들을 꽂아주는지 정말 쓸데 없는 박애주의는 이 비열한 거리에서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다시 아는 애로 당시에 놀고 있던 SHIN을 꽂아주었다. 다만 좀 문제가 있었던 건, 내가 살고 있던 빅팍과 신이 살던 글렌다로는 완전 반대방향, 신은 차도 팔고 없었던지라 공장에 출근하려면 내 픽업이 필요했는데 무려 아침부터 빅팍에서 글렌다로까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공장으로 가는 대장정. 아침에만 약 50킬로를 운전했다. 퇴근하면 집까지데려다주는것까지 하면 약 하루에 100킬로 미터를 운전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고역이었다.  결국 신과 얘기 끝에 신이 내가 살고 있는 빅팍으로 이사오기로 했다.  남의 일처럼 손놓고 있던 신 대신에 급하게 방을 알아봤는데 제니누나네 집 한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침 제니누나는 한국에 들어간 상태라, 그 집을 우리 집주인인 HJ가 봐주고 있었는데 (퍼스 바닥 좁음, 더군다나 같은 동네 한국사람이면 뭐..서로 ) 그래서 내가 HJ에게 얘기해서 그 집에 신이를 넣어줬다. 나로서는 한결 픽업이 수월해지는 때였다.


 게다가 신이는 일을 꽤나 열심히 잘 하던 스타일이라 이땐 공장일이 거의 천국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맘때쯤부터 존이 아예 다른 파트로 가버리고, 범핑파트엔 블레이크란 호주애가 새로 와서 토니가 다시 우리파트로 돌아왔고,  내가 그 파트를 책임지다시피 하게 되었다. 정말 신,나,토니 3명에서 합이 쫙쫙 맞고 일도 편하고 신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아마노의 등장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마노란 녀석이 그 불행의 시작점 이었다. 드디어 아마노 등장이다.

 아마노는 이란계 호주인이었다. 첫 인상은 참 좋았다. 내 스스로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란인이라는 얘기를 들은 순간, 좀 반가웠다.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호의감도 있었고, (아마노는 무슬림이 아니었지만..) 나중에 이란 여행을 할 것이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더군다나 중동,이란,인도를 관통하는 그 특유의 능글거림과 낙천적인 느낌이 참 좋았다. 


 어쨌든 그 아마노가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면서 스잔나가 나에게 와 오늘부터 아마노에게 모든 일들을 다 알려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것인가.  ' 그래 워킹홀리데이에게 이 파트를 맡겨놓을리가 없지 ' 라고 생각이 들었고 난 약간은 자포자기 성격으로 아마노를 알려주게 되었다. 근데 일을 알려주고 함께 하면서부터 아마노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마노는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고 밝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굉장히 무례했고, 뭔가를 알려주면 꼭 토를 달았다. 더 편하고 빠른 방법을 알려줘도 이렇게 해도 되지 않냐면서 토를 달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 니 편할데로 해라 내 깔려두면 됐지만 그렇게 되면 일에 차질이 생기고 느려지고, 개판이 되었다. 하지만 또 고집까지 있어서 그래도 꼭 지 방식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갈등이 계속 생겼다. 스잔나는 되지도 않게 계속 아마노에게 일을 가르쳐주라고 얘기하고, 난 중간에 껴서 일을 가르쳐주는데 정말 짜증이 났다. 아.. 비자에서 아마노에게 밀려서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현재 이 파트에 워홀러만 있다보니 불안했는지 시민권자 한명을 낄려고 하는거 같은데 그래서 비자에 밀려서 일도 못하는 녀석에게 일을 다 가르쳐주고 맡겨야 하는것도 짜증. 그 녀석이 또 가르쳐주는데로 안해서 짜증. 일은 일데로 힘들어져서 짜증. 정말 지옥같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마노 덕분에 돈은 많이 벌었던 시간이다. 일을 어찌나 개판으로 하던지 언제나 일이 늦게 끝났다. 


 스잔나도 아마노가 짜증나긴 마찬가지, 하지만 스잔나도 위에서 제프가 시킨일이니 어쩔수 없다는듯이 대했고, 또 어차피 스잔나는 잠깐잠깐 들려 일이 잘 되가고 있나 살펴보고 갈뿐. 죽어나는건 나와 신이 둘이었다. 


 그러던중 아마노로 인해 잉여인력이 되버렸기 때문에 이 파트에서 짬이 안되는 신이가 다른 3일 일하는 파트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 하루에도 12번씩 공장을 그만둘까 생각했다. 신은 5일일하던 파트에서 3일일하던 파트로 옮겨진 허탈감때문인지 이때부터 출근을 안하길 밥먹듯 했다.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꽂아준 나를 봐서라도 좀 더 열심히 해줬어야 했다. 이 때가 바로 그 사건도 포함이다. 비 오는 날 아침 신이를 데리로 가다가 교통사고가 난 날, 그 날도 신은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도 하지 않을 녀석을 데리러 가다가 난 교통사고. 허탈함.


 그리고 출근하면 날 기다리고 있는건 아마노였다. 

 그나마도 토니가 있을 때는 나은편이었다. 범핑 파트에 새로 들어간 블레이크란 녀석이 어찌나 일을 못했던지 우리파트로 내 쫒아버렸다. 키위 할배 베리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도저히 그 파트에는 못있었던 것.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우리파트에 있던 토니는 범핑파트로 옮겨가 우리파트는 드디어 생지옥으로 돌변했다.


 제멋대로이고 개판인 아마노, 말은 조낸 잘 듣는데, 일 존나 못하는 블레이크. 이 둘과 함께 일하는 동안 정말 매일 매일 땀이 비오듯 쏟아져 항상 온몸이 흠뻑젖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순간순간 머리속에는 공장을 그만두느냐 마느냐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정말 아침에 출근해서 일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옥이었다. 그리고 신이는 결국 짤렸다. 사람 안짜르기로 유명한 이 곳에서 짤린 신이. 차라리 잘 됐다는 듯 별 신경안쓰는 그 모습에서 참으로 실망감까지 느꼈다. 


 모든게 엉망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희비의 쌍곡선.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했을까.


 블레이크가 일을 그만둔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온 것은 Jaykay (제이케이, JK)였다.


 날 이 공장에서 꽂아준 제이케이. 사실 제이케이가 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로서는 참 부끄러운 스토리가 있었다. 1월초에 제이케이가 날 이 공장에 꽂아주며 우린 서로 바톤터치를 하기로 했다. 제이케이가 세컨비자를 따고 돌아오면 난 제이케이에게 공장일을 넘겨주고 난 다시 카나본으로 돌아가 시푸드 공장에 들어가기로. 하지만 애플이 전혀 일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난 나대로 일을 해도 전혀 돈이 모이지 않는 지옥같은 상황속에서 제이케이가 돌아올 날이 다가 오고 있었다. 퍼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애플은 차라리 그냥 카나본으로 다시 돌아가는게 낫지 않겠냐고 했으나, 이 일을 때려치고 훌쩍 올라가기도 뭐한 상황. 그래도 제이케이에게 잡을 꼭 바톤 터치해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맘때쯤 제이케이에게 연락을 했을것이다. 언제쯤 퍼스로 돌아오느냐고 물었는데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그리고 때가 아마 4월쯤 됐을까, 시푸드가 예년보다 일찍 시즌을 시작해서 이미 시작해버린 상황에서 제이케이가 퍼스로 돌아왔다. 정말 머리가 복잡했다. 애플이랑 함께 일을 해서 돈이라도 어느정도 세이브 된 상황이었으면 좋으련만 당시에 애플이 일을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통장에 잔고의 여유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얄팍한 고민의 시간도 잠시, 선택은 너무나 간단했다. 시푸드 공장이 시작해버렸다라는 간단한 이유로 난 제이케이의 전화를 응대했다. 제이케이의 목소리는 아주 잠시 분노했다 이내 가라 앉았다. 더이상의 미련도 없다는 듯이 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제이케이. 마치 ' 그래 그 잡 먹고 떨어져라 '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나를 믿고 일자리를 준 녀석을 배신했다. 차라리 " 형 그건 아니죠 " 라고 따졌었으면 기분이 더 나았을 뻔했지만 제이케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참으로 비참하고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와도 현실은 어쩔수 없었다. 수 많은 가장들이 그러하듯 난 지금 애플을 먹여살리며 버텨나가야 만 했다.  술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제이케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 불편했다.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 뒤에 제이케이는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이 공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제이케이를 다시 공장에서 만났던 순간은 정말 머리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만난 제이케이는 머리를 엄청 길러서 상투처럼 머리를 틀고, 수염이 나있는것이 좀 닛뽄삘이 나면서 낯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낯선 모습만큼 나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낯설었다. 얼굴도 눈도 웃고 있었으나 그 시선 뒤편에 여러 모습이 느껴졌다. " 봤지? 니가 바톤터치 해주지 않았는데도 나 혼자서 다시 왔어 " 하는 듯한 당당함부터 나에 대한 경멸의 시선.


 그런 제이케이를 보며 난 어떤 표정으로 녀석을 봐야 할지 난감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건넨 말은 어쨌든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와 그 때는 미안했다 라는 상투적인 말뿐. 그 말에 괜찮다고 얘기하는 제이케이의 답은 참으로 날 부끄럽게 했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한 순간이 금방 해소 될 수 있었던건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지옥같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난 제이케이가 구세주 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의지할 곳이 생긴것이다. 말이 통하는 한국인. 일을 잘하는 사람. 제이케이가 있어준다면 아마노가 있어도 버틸수 있을것 같았다. 역시나 돌아온 제이케이는 여전히 빠릿빠릿했다. 금새 적응해서 일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줬다. 개같은 아마노 새끼 한명 따위 있어봤자 다 커버가 가능했다. 너무나 생지옥같던 순간이었기에 제이케이의 등장은 천국으로 다시 인도했고, 행복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일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스잔나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기적같은 한마디를 건넨다.

 " 아마노 짤렸다. No more Amano "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가는 스잔나의 뒷모습을 보며 환호를 질렀다. 스잔나도 아마노때문에 고통스러웠구나 하는 동질감. 정말 그 날, 천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내 아마노의 후임으로 들어온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격인 코리안 아마노,  팬 등장이다.


 * 한국인 아마노, 팬의 등장!


 제이케이가 퍼스로 돌아와 나에게 계란공장 바톤터치를 받지 못하고 있던 중, 아는 사람의 소개로 잠시 랍스터(바닷가재)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 때 만났다는 제이케이와 동갑내기 친구인 팬. 항상 부채를 들고다녀서 FAN이란 별명으로 불리우다가 영어이름을 팬으로 지었다는 팬은 참 재밌는 캐릭터였다. 일단 성격도 완전 좋아보이고, 서글서글하고 붙임성도 좋고, 말도 많은게 참 재밌고 좋은 녀석처럼 보였다. 제이케이도 같은 이유로 팬을 좋아했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공장에 또 꽂아준것이다. 첫 날 둘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고, 나도 호감이 생겼다.


 처음엔 팬이 공장에 적응하느라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어떤것이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마 팬의 성격 때문에 짜증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훗날 제이케이와 대화해 본 봐 제이케이는 팬의 불성실함으로 짜증나기 시작했던 듯 했다. 일단 나와 제이케이 둘다 팬과 거리를 두고 있는 현재엔 거의 같은 이유들로 거리를 두고 있으나 그 시작점은 서로 달랐던 듯 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팬은 현재 나와 제이케이로 부터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의 시작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맨 처음 팬이 공장에 들어오고나서 얼마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는지 모른다. 성격이 좋아서 또 지옥같던 아마노도 사라지고 순수하게 한국인 3명이서 파트를 돌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하루종일 3명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일하고 일의 합도 착착 맞아 떨어지는게 재미와 일의 쉬움 모든게 갖춰져 공장은 완전 천국 그 자체. 정말 하루하루 출근하는게 즐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날이었을까 지하 냉동창고 있는 곳에서 팔레타이징을 할 때였다. 팔레타이징은 뭐 간단히 말해서 팔레트라고 부르는 지게차로 옮길수 있게 만든 파란색 나무판위에 박스를 쌓고 일정 높이 까지 올려서 랩으로 꽁꽁 감아서 지게차로 쉽게 옮길수 있게 해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공장에서 그렇게 함. 알아두면 좋음) 



 [ 사진 위 : 저것이 팔레트다. 지게차가 들어올리기 쉽게 만든 나무 틀. 저 위에 물건들을 쌓는다. 일단 모든 공장에서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팔레트 메이커  CHEP 은 뭐 호주에서 공장 좀 다녀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정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팔레트 ]


 어쨌든 팔레타이징을 하던 중 우리는 여느 때처럼 우스개를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던중 어찌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팬이 자기의 실제 본명이 굉장히 특이한 이름이라고 애기를 하면서 나와 제이케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계속 궁금해 하는 우리에게 계속 부추기듯. " 아마 이때까지 살면서  한번도 못들어봤을껄요 " 라면서 궁금증을 부추겼고, 계속 궁금해서 한글자만 알려달라고 하면 " 한글자만 알려주면 이름알아요 그래서 못가르쳐줘요 " 라고 말하면서 또 궁금증을 부추기듯,    " 두번째 글자가 진짜 특이해요 아주 특이해서 알려주면 이름 맞출수 있을정도에요 " 라고 말하는거다.  이름이 완전 특이한데 한글자만 알면 나머지 글자를 알수 있을정도의 단어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기에 제이케이와 둘이서 계속 알려달라고 하는데 끝까지 얘기를 안해주는거다. 제이케이는 좀 빡이 쳤는지  안가르쳐줄껄 왜 말을 꺼냈냐며 화를 냈고, 팬은 팬데로 왜 이름을 궁금해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보통은 저러다 얘기를 해주는것이 정상이고, 정말로 저렇게 얘기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째서 저런식으로 얘기를 하는가. 어쨌든 내가 웃으며 " 난 궁금하니까 얘기해줘 "라고 하자 팬은 " 나중에 술한잔 할 때 얘기해줄게요. 라고 하는것이다.


 뭐.. 이 얘기에 대한 결론만 얘기하자면 술을 먹으니 " 나중에 친해지면 얘기해줄게요 " 라고 얘기했고, 나중엔 " 그게 아직도 궁금해요? 얘기하기 싫어요 " 였다. 난 팬이 짜증나기 시작한 부분이 이 이름 사건과 맨처음 팬과 술한잔 하고 난뒤 집을 렌트하고 집들이를 했을때 부터였던것 같다. 


 그동안 내가 파악한 팬은 일단 거짓말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녀석. 정말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눈동자가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짓는다는 왼쪽윈지, 오른쪽 윈지를 항상 향하며 얘기를 한다. 정말 특이하다. 상대방의 눈을 보고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항상 눈동자를 위로 하고 뭔가를 떠올리는듯 얘기하는데 정말 당장에 걸릴 거짓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리고 정말 믿을수 없을 정도로 쪼잔하다. 정말 내가 살면서 만난 인간 중에 가장 쪼잔한 인간일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게으르다. 특히 자신의 일을 제외한 모든 것에 게으르다. 이 것이 내가 팬을 싫어하게 된 계기이며, 그 순서다. 뭐 팬의 기가 막힌 어록이나 행동들은 따로 팬에 대한 특집으로 마련해볼까 한다.


 일단 이번 편은 공장 얘기 중심이기 때문에 공장에 관련된 게으른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 한다. 


 팬의 게으름을 깨달았던 한 순간이 존재한다. 사실 그 전 부터 조금씩 짜증나는 부분이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뭐 그 정도는 나나, 또 누구나 있는 그 정도의 게으름이지만 그 사건은 정말 팬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고히 굳이게 되게 만든 일이었다.  제이케이가 어떤일로 일찍 퇴근했던 날,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박스로 가득 채워진 트롤리를 지하로 팬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가는건 분명 아직 트롤리 하나가 나아있었는데 팬이 그걸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이다. 뭐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난 기계 청소하고, 펌프 조립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팬이 밖에서 팩킹룸 안으로 들어오며 오른쪽 구석을 쳐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엔 분명 지하로 내려가야할 트롤리 하나가 떡하니 있었다. 팬은 그 트롤리를 보자마자 곧바로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스잔나가 팩킹룸으로 들어와 그 하나 남은 트롤리를 보더니 팬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사라진 팬,  그러자 청소를 하고 있던 나에게 스잔나가 트롤리 하나를 왜 내리지 않았냐고 말하길래, 내가 그 하나를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팬은 약 30분 후에 돌아왔다. 퇴근 시간이었다. " 형 스잔나가 저 찾았어요? " 


 " 어 "

 " 왜요? "

 " 니 트롤리 하나 안내려서 저기 있던거 내리라고 "

 " 아 정말요? 하나 제가 안내렸어요? "

 그 대답을 듣자 난  그 순간 좀 빡이쳐서. 


 " 못봤어? 저 구석에 있었잖아 "

 " 못봤어요 "

 " 아 그래? 난 너가 분명히 봤다고 생각하는데 ㅎㅎㅎ "

 

 분명 들어오면서 고개를 돌려 트롤리를 보고 곧장 뒤돌아 나가던 녀석의 모습이 참 웃겼다.


 어쨌든 이 사건을 시작으로 팬의 게으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한번 눈 밖에 나니 정말 한도 끝도 없었다.

 남들 바쁘게 한참 움직이는데 밍기적 거리는거하며, 틈만 나면 어디 주저 앉으려는거 하며, 허리 아프다 뭐 아프다 하는 핑계로 일 대충대충 하는거 하며 정말 언제나 우거지상을 해서 일하는 모습이 꼴 배기 싫어 죽겠는거다. 





  한번은 커팅엣지라는 제품을 만들때 였다, 팬이 하는 역활은 기계에서 자동으로 포장되어 나오는 제품을 일일이 하나하나 집어서 혹시나 액체가 새는지 검사를 하는 역활이다. 원래 공장일이란게 다리 아프다고 느끼면 일이 쉽다는 증거다. 일이 쉽기 때문에 서있는 일이 가장 힘든일이라는 의미. 팬은 언제나 죽상을 해가지고 일을 하는데 한번은 얼마나 앉고 싶었는지 빈박스들을 주섬주섬 가져다 위의 사진 처럼 앉아서 일을 하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 사진은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팬 뒤에 서있던 제이케이 제공 ) 정말 이것 처럼 사진이 증거로 있는 것들은 약과. 정말 그 모습은 같이 일해 보지 않은 이라면 모를 정도로 가관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팔레트에 박스를 쌓고 렙질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손으로 직접 감으면 좀 힘든 편인데, 그래도 꼼꼼하게 타이트하게 감지 않으면 박스 쌓은 것들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대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인데, 누구나 랩을 가지고 그걸 감다보면 코끼리코를 하고 돈 것 처럼 어지럽다. 아직도 팬이 맨 처음 랩질을 했을 때 했던 "어지럼증" 개드립이 생각난다. 랩질을 대충 한번 하고 나서 제이케이와 내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얘기하자, 자신이 어지럼증이 있었서 그런다고 말한 개드립. 이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훗날 팬의 거짓말하는 행동들을 생각해보니 이때가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때 당시 제이케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 그거 하고 안어지러운 사람이 어딨냐? 나도 어지럽고 경무형도 어지럽고 다 어지러워 " 라고 말을 했던게 생각난다.



 어쨋든 어지럼증 개드립 때문인지 팬은 항상 이 일, 랩질 감는 것을 대충 대충했다.   랩을 타이트하게 감으면 힘드니 대충, 그것도 엉성하게 감는거다. 덕분에 한번은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박스 쌓은게 완전 무너진 상태가 되어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거래처에서 보낸것이다. 너무 짜증나서 팬에게 애둘러서 한번은 이렇게 말한적이있다. 


 " 아 진짜 시푸드 공장에서 일할 땐 상상도 못했던 거다. 거긴 랩질 대충하면 사고랑 직결되서 조금이라도 느슨하면 그냥 랩을 칼로 짤라버리고 다시 감으라고 얘기하는데 진짜 여긴 쉬운거다. "


 " 형 저 당근농장에서 일 할 때도 랩질 했어요, 거긴 너무 바뻐서 기계로 했어요. "


 아 이새끼..내 말을 이해를 진짜 잘못 이해했다. 시푸드가 일이 빡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랩질 좀 잘하라고 얘기한건데 일이 빡셌다는 개드립을 또 친다. 


 어쨌든 안 그래도 랩 감는 걸 너무나 대충하던 팬이었는데 저렇게 우려하던 일이 벌어져서 오니 짜증이 대폭발했고, 그 이후 팬이 랩 질을 할 때면 가끔 박스에다가  Wrapped by Fan  이라고 적어서 증거를 남겼다. 종이에 적어서 랩 질 한 곳에다가 끼워넣는데 한번은 얼마나 느슨하게 대충 감았던지 그 종이가 밑으로 쑥 빠졌을 정도다. 




 [ 사진 위, 아래 : 지하 창고로 내려간 팔레트들.. 나무로 된 팔레트 위에 저렇게 박스를 쌓는다 ]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니 정말 녀석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조낸 개념있는 척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참 진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완전 팬에게 짜증이 나있었다. 그러면서 어느순간 제이케이와 팬에 대해 얘기하다가 제이케이는 진작부터 팬의 이런 일하는 태도, 게으름에 짜증나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제이케이는 나에게 " 전 형이 가만히 있길래 형은 안짜증나는데 저 혼자 짜증나는줄 알고 얘기안하고 있었어요 " 라고 하는데 " 나도 진작 부터 짜증은 났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지 "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바로 전 랍스터 공장에서도 아주 게으르기로 유명했고 또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팬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제이케이에게 " 근데 넌 왜 팬 여기 꽂아줬냐? " 라고 묻자.


 " 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도 전 그렇게 안느껴서 몰랐어요 , 정말 이정도일줄은 몰랐어요 " 라고 말하는거다. 사실 그것도 무리가 아닌게 팬과 처음 만나서 얘기하면 세상에 이렇게 좋은놈이 없다. 성격좋아, 개념박혀있어. 아주 짱이다. 근데 문제는 그게 다 거짓말. 말뿐이다. 정말 거짓말을 전혀 생각없이 한다. 그리고 모든 아니 항상 거의 거짓말을 무의식중에 한다. 어쨌든  제이케이는 어느순간 부터 팬과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말을 하고 또 친하게 지내면 일을 개판으로 하고 좀 화난듯 말을 안하면 눈치보고는 일을 좀 제대로 한다는 이유에서였고, 난 입만 열면 거짓말 드립 치는 녀석에게 짜증나고 우거지상해서 일하는 모습도 짜증나고, 쪼잔한것도 짜증나고 다 짜증나서 말을 거의 안하게 되었다. 사실 뭐 어쨌든 3명이서 붙어있기 때문에 말을 아예 안할수는 없으나 아주 필요한 말만 나눴다. 일에 관한 이야기들만. 결국 공장에서 3명이서 일하는 동안 제이케이와 나 둘이서만 대화를 하고 팬은 거의 유령이나 다름 없었다. 



 [ 사진 위 : 기계 앞에 서있는 제이케이와 박스 쌓는 나. 예를 들면 이런 상태에서 팬은 유령이다. 제이케이와 난 둘이서 저렇게 떨어진 상태에서 둘이서 계속 대화를 나눈다. ]

 맨 처음 팬이 공장에 들어와서 우스개로 일못하는 아마노 같다고 코리안 아마노, 코리아노 라고 장난식으로 이름 붙였었는데 지금은 정말 코리아노다. 팩킹룸에서 일하는 다른 파트의 필리핀 아줌마들마저도 팬의 게으름을 알기에 아줌마들이 팬에게 아마노라고 장난식으로 놀리기도 하고 Lazy boy라고 놀리고, 틈만나면 어딘가에 주저 앉아 있는 팬, 또는 졸고 있는 팬을 놀려대곤 했다. 심지어 언젠가 한번은 또 잠시 일이 지연되는 틈을 타 구석에 앉아서 조는 모습을 보고 필리핀 아줌마가 와서 아이폰4를 좀 달라고 하면서 그걸로 팬 자는 모습 사진을 찍을려고 하는거다. 어떤의미로는 만인에게 인정 받고 있었다. 



 사실 아마노와 팬을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면 물론 아마노가 더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팬은 같은 한국인이고 오히려 말이 통해서 더욱 미움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게다가 일 외적으로도 참 맘에 안들었던 면이 많았기에 더욱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가끔 팬에게 너무하나 생각해보지만 그럼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일말의 자책감 혹은 동정심이 날라간다.  더군다나 이미 팬을 잘대해주기엔 공장일이며 그 외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참 문제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제이케이와 내가 티를 내고 있음에도 팬은 달라지기는 커녕 점점 더 예측가능해질 뿐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난 밖으로 나가 물체크하고 돌아와 팩킹 준비하고 뭐 하는 동안 제이케이와 팬은 범핑룸으로 일을 도와주로 가는데, 어느날 아침 출근해서 제이케이가 한숨을 쉬며 " 아 오늘 버킷이 4팔레트에요 " 라고 말하는거다.  범핑룸에서 일 할 때 나름 그나마 빡센 일인데 보통 1-2팔레트 하기 때문에 4팔레트면 빡센거다.  제이케이는 그러면서 " 아 또 팬 6시 15분에 오겠네 " 라고 말을 하는거다.  버킷 뚜껑열고 옮기고 하는 그 일이 빡세기 때문에 분명 팬은 그거 안할려고 일부로 늦게 올거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 진짜 그거 하기 싫은가봐요, 저 혼자 지금 몇달째 하고 있어요 " 라고 말하는데 제이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 그럼 내가 가서 도와줄게 " 라고 말하고 평소엔 좀 늑장도 부리고 여유도 부리며 밖에 나갔다오는걸 빨리 돌아와 곧장 범핑룸으로 갔다. 


 이제 막 팔레트에 가득 쌓여있는 버킷(양동이)을 범핑룸안에 쭉 가져다 놨는데 4팔레이 아니라 5팔레트였다. 처음 보는 엄청난 양. 일단 제이케이랑 함께 그 일을 하다가 일정 양을 한 후에 난 버킷을 씻는 일을 했다.  그리고 제이케이의 예언대로 팬은 6시 15분 정도 쯤에 왔다. 그리고 너무나 웃기게도 내가 버킷을 씻고 있으면 팬은 제이케이를 도와 뚜껑을 열고 옮기는 일을 했어야 함에도 나에게 와서 " 형 그거 계속 할꺼에요? " 라고 묻는거다. 


 ' 아 진짜 옮기기 싫어하는구나 '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화 하나만 봐도 정말 얼마나 엄청난 놈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측가능한 행동이라니. 아침에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고, 좀 힘든일이 있으면 다른 쉬운일을 찾아서 먼저 해야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해도 될 쉬운일을 가지고 사라지고, 아무때나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 거리고, 속으로 이 새끼 이제 저거 할꺼다 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 짓거릴하고, 이 새끼 이거 안해놓겠네 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안해놓고. 이런 예측가능함이 얼마나 팬이 대단한 놈인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파트의 일이 3인1조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아예 쌩깔수도 없고, 대화를 안할수도 없다. 하지만 하루 8시간 동안 팬과 나누는 대화는 오직 일과 관련 된 것을 말할 때 뿐이다. 이런 어색한 관계속에서 공장일은 너무나 무사히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엔 속사정도 모르고 아줌마들이나 스잔나가 우리 팀웍이 너무나 좋다며 일들을 너무 잘한다며 좋아했으나 지금 현재는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도 나와 제이케이가 팬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며 거의 팬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그런 불편한 관계임을 눈치 채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혹 이번 편을 보고 그런거가지고 한국사람끼리 그러면 되나요? 혹은 그럴수도 있죠 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은 걱정마시라. 다음편 그리고 앞으로 여러 에피소드에서 대활약을 할 팬의 어록이나 행동들을 보면 아마 경외심이 들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호주 워킹 수기는 다시 이렇게 포문을 엽니다.

 늦은 업데이트임에도 기다려주시고 자주 방문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공장 사진 몇장 및 해설 ]






 [ 사진 위 : 벤츠, 얼마전  BMW 에서 바꾼 스잔나 차. 뭐 공장일 해도 벤츠 타고 다닐 수 있은 좋은 나라 호주 나라 ]




 [ 사진 위 : 장난치고 있는 제이케이, 이거 말고 제이케이 공장에서 장난치는 사진 엄청 많음. 참 엿같은 일이 있었음에도 나와 정답게 놀아주는 제이케이. 모두 제이케이에게 박수를... ] 




[ 사진 위 : 스케쥴 표. 그날 생산 해야 될 품목을 스잔나가 적으면, 뭐 그거 보고 알아서 박스, 비닐백 등등을 제품에 맞게 스스로 셋팅하고 준비해서 만든다. ]



[ 사진 위 : 트롤리잭, 뭐 호주 공장 다닌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물건. ] 



[ 사진 위 : 샘플백, 서류가 보일테데 저거 보고 오늘 무슨 제품 생산하는 지 보고, 2kg  비닐백 가져다가 글씨 써서 샘플백 만듬. 저기에 계란액체 샘플 담아서 검사실에 보냄. ] 





 [ 사진 위 : 우리파트에서 바라본 밖, 통유리가 붙어있다. 아무래도 주요 작업이다보니 감독관들이 가끔 저 바깥에서 우릴 지켜보기도 하고, 공장에 견학온 대학생들이 단체로 동물원 원숭이 보듯 구경하는 유리 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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