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아보기/호주 워킹홀리데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58. 도박묵시록 시드니

나이트엔데이 2010. 9. 20. 10:00
이 호주 워킹 홀리데이 수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한편이 단 몇분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고, 몇 달에 관한 얘기 일 수도 있습니다. 개별 에피소드 별로 보시는 것 보다 처음 부터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수기 몇편에 한번씩 Extra편에는 각종 호주 생활 관련, 준비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고,호주 생활,워킹홀리데이 관련 질문은 언제나 리플로 달아주시면 확인 즉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수기의 처음부터 읽으실 분은 클릭하세요! 호주 워킹 홀리데이 첫편보기!

 시드니를 다녀온게 2월말에서 3월초니 벌써 6개월여가 지났네요. 여행다닐때 처럼 매일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바탕으로 글을 올리는게 아니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사건의 순서나 인과관계등을 적는데 많이 헷갈리네요. 이 글 쓰다보니 불현듯 생각나는게 있어서 이 글 앞부분에 적어봅니다. 중요한 사건은 아니나 언제나 그렇듯이 제 기록 보존을 위함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9월엔 좀 포스팅을 많이 하겠다고 다짐 했으나 힘드네요.   꾸준히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시드니 추가 내용 ] 
 아마도 시드니 첫날 밤 쯤 되었을까,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과 얘기하던 중 한 사람과 조금 친해졌다.
 워홀러가 아니라 순수 여행자였는데 브리즈번을 시작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호주를 여행 중인 이였는데 금새 의기투합해서 술 한잔 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pub에 가려고 했으나 내가 여권을 두고 오는 바람에 못가고 한국 식당에 가서 소주 한잔 하려고 했으나 늦은 밤이고 귀찮고 해서 그냥 보틀샵에 가서 술 좀 사다가 먹기로 했다. 안주는 의례 있는 피자가게에서 조각 피자를 사서 먹기로 했다.
 
 이 사람과 조금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자꾸 은근슬쩍 말을 까려는거다. 나 보다 어린거 같은데 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술 먹다가 나이 얘기하는데 자기보다 2-3살 어리게 봤다는 말을 했다. 내가 원래 나이보다 한참 들어보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돈데 이상하게도 호주 와서 날 어리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어릴때 노안이면 늙어 동안인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은근 슬쩍 말을 까다가 나이가 오히려 2-3살 많은걸 알고는 움찔 하면서 깍듯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린 보틀샵에 들어가서 술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이미 뭐 보틀샵이야 몇만번이고 들렸던 나인지라 그냥 시드니 보틀샵은 뭐 특별한거 있나 싶었는데 그런건 없었다.  아무래도 그가 여행자다 보니 호주 물정을 잘 모르기에 내가 몇가지 맥주 추천을 해주고 그 중에 그가 하나를 골랐다. 그래서 고른것이 흔해빠진 Toohey  근데 맥주를 얼마나 살지 얘기하다가 내가 " 얼마나 드실래요? 병으로 살까요? " 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마음이야 언제나 한박스인 나지만 그를 배려한 질문. 근데 이게 왠일 " 한박스 먹죠 "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와우. 이렇게 먼곳에 와서 술 친구를 만나는구나.

 그래서 난 기쁜 마음으로 카운터로 가서 1카튼을 시켰다. 그리고 점원이 한박스를 들고 왔다. 그러자 눈이 동그래지며 깜짝 놀라는 그. " 이거 한박스요? 이걸 어떻게 먹어요? "  

 " 한박스 드신다면서요... "
 " 저거요 " 라며 가리킨것은 6개 들이 식스팩 -_-;;;;
 " 아... 전 맨날 한박스 사서 먹어서... 이 한박스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
 " 아 저걸 둘이서 어떻게 먹어요 "
 

 " 전...혼자서도 먹는걸요 -_-; " 라고 말하면 짐승취급할것 같아 그냥 조용히 점원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한박스 취소하고 맥주 한팩을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 백패커 (게스트하우스,여행자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뭐 그런 첫날밤의 추억. 대화내용은 카지노 얘기, 여행 얘기 였던듯... 


 58. 도박묵시록 시드니

 화요일 아침. 시드니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영사관에 가서 여권을 신청하고,  마지막으로 시드니 구경 좀 하다가 오후에 공항에 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퍼스로 돌아가면 된다.  샤워를 하고 짐을 싹 꾸린 후에, 배낭을 메고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담배 한대를 피며 뭘 먼저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그냥 걷기로 했다. 무작정 한번도 안걸어가봤던 쪽으로 향해 걸었다.

  시내 중심에 아담한 주택가를 지나쳐 한적한 아침. 여유자적하게 길을 걸었다.
 퍼스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른 주택가들. 이른 아침의 한적함 등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조금만 걸어가면 언제나 마주치는 한국인 레스토랑 등이 여전히 시드니 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국식으로 지어진 수 많은 주택풍에서 왠지 모를 이국적인 느낌도 받으며 그렇게 한적한 길을 걷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낯선 곳을 여유롭게 거니는게 너무나 행복하다. 정말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한가득.


 이 매력적인 길들을 걸으며 이쪽으로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나라안이면서도 너무나 다른 분위기. 정말 외국에 나와있는 느낌. 어쩌면 퍼스는 내가 너무나 오래 머물었기에 외국보다는 그냥 우리 동네 같은 느낌이라면 이 곳은 정말 여행자의 느낌으로서 느끼는 여행지 분위기였다.

 한참 여행 기분에 푹 취해 걷다보니 어디쯤 와있나 싶어서 지도를 펴보니 왠걸, 한참 엄한데로 와있었다. 영사관과는 정 반대 방향. 너무 삼천포로 빠졌다 싶어서 길을 꺾어 영사관쪽으로 천천히 향해 가기로 했다.  그리고 엄청 긴 계단 ( 여기서 보는 풍경. 모습이 너무 이뻤다. )을 지나 큰 도로에 다달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핫도그 가게 였다.



 뭔가 포스를 내뿜으며 자리 잡고 있는 핫도그 가게. 이런 외딴 곳에 왠 이런걸. 하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길을 건너 가까이 가자.  뭔가 맛집 포스.

 Harry's Cafe de Wheels 라는 핫도그 가게였는데 가까이 가서 벽 옆 쪽을 보니 난리,  아주 옛날에 찍은 흑백사진들에서 가게의 역사를 알 수 있었고, 또 수 많은 명사들이 이 곳에 찾아와 핫도그를 맛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유명한 이들이 가게에 다녀가면 사진찍어서 남겨놓는건 한국놈들이건 서양새끼들이건 똑같은듯. 어쨌든. 또한 이것이 이 가게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의미. 



 [ 사진 설명 : KFC할아버지, 러셀크로, 기타 등등등 이름은 잘 모르나 얼굴보면 아는 영화배우들도 수두룩 ]


 뭘 먹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가게에 유명한것이 콩갈아넣은 소스 같아서 콩소스 넣은 핫도그를 시켰다. 일단 보기엔 완전 먹음직스러운게 간지 줄줄. 정말 군침이 도는 핫도그였다. 일단 핫도그를 들고 가게 뒷편에 물가에 있는 나무 벤치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이른 아침인지 사람은 없고 역시나 갈매기들이 노닐고 있었는데 다행이도 몇명의 노동자들이 핫도그나 미트파이등을 사서 근처에 자리 잡아서 달링하버때 보다는 집중공격을 덜 받을 것 같았다.

 정말 먹음직스런 핫도그 인증 사진을 몇방 박고, 본격적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핫도그를 한입 베어무는데 먼저 부드러운 빵의 질감이 일품. 보통 이런 길거리 핫도그는 병신같은 빵을 써서 빵은 솔직히 개병진인데 완전 빵이 뽀송뽀송. 그리고 양파며, 핫도그 소세지며 훌륭. But......

 이 가게를 유명하게 했을 것 같은 그 초록색의 콩소스가 맛을 망치고 있었다. 도무지 적응 안되는 그 맛.  텁텁하면서 씹스러운 그 맛. 아침 일찍이라  살짝 출출 할뿐 그닥 먹을게 먹히지 않았던 상황인지라 정말 아쉬울정도로 콩소스가 맛없었다. 아... 점심때만 됐으면 이거 대충 먹어치우고 콩소스 없는걸로다가 하나 더 시켜서 먹고 싶었을 정도. 

 뭐 어쩌겠는가.
 꾸역꾸역 입에 쳐넣고,  의무감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후에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본격적으로 영사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걸어 걸어 시드니의 마지막 풍경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자 저 멀리 시드니 타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거대 건물을 랜드마크 삼아 걷는 여정. 도시의 도보여행은 언제나 이런것이다.




[ 사진 설명 : 시드니의 골목골목. 이쁜 건물 발견. 스쿠터 샵이었는데 건물이 좀 이쁨. ]


 그리고 난 드디어 하이드파크에 다달았다. 하이드 파크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면 영사관이 있는 스f트릿이 나온다.  별관심없이 하이드파크를 빠져나갈 무렵 내 눈에 아주 흥미로운 것이 들어왔다. 공원 바닥에 거대 체스판이 깔려있었는데 중국계인듯 한 할아버지와 수염이 아주멋드러진 할배가 체스를 두고 있었다. 아.. 이건 우리동네 흑염소 집 앞에서 할아버지들이 내기 윷놀이를 하던 모습 만큼 간지나는 모습이었다. 

 여담이지만 난 유럽의 노천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는 노부부 만큼이나 한 낮에 여유롭게 막걸리 한두잔 걸치고 있는 할배,할매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로움과 간지를 느낀다. 우리 동네 흑염소 집 앞에서 언제나 멍석을 깔고 내기 윷놀이를 즐기는 할배들의 모습을 보며 아.. 저게 사는 맛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시드니 하이드파크에서 그런 모습을 또 보게 될 줄이야.  

 근처 벤치에 앉아 할배들의 체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실실 쪼개며 여유롭게 상대를 농락하는 아시아계 할배와 담배 한대 펴가며 심각하게 수를 생각하는 서양할배의 대결.
 결과는 뭐.. 여유롭게 농락하던 아시아 할배의 승리.

 다시 여담이지만 체스 사진 찍는 도중에 뒤로 교복입은 호주 여고생들이 지나갔는데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데 나도 모르게 카메라가 여고생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지며 여고생 이동경로를 따라 카메라가 자동으로 움직임. 정말 내가 움직인게 아니라 카메라가 자동으로.....  아 습..

 체스경기 구경후, 바로 일어나 영사관으로 향했다.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영사관이 있는 빌딩으로 들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영사관으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자 이미 많은 한국사람들이 안에 있었다. 

[ 사진설명 : 영사관이 있는 건물 ]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면허증 공증 받을 서류랑 여권신청 서류랑 정리하고 작성했다. 그리고 내 순번이 와서 내는데 이런 뭔가 할게 많았다. 일단 여권을 다시 받을 수 있게 택배 봉투도 사와야했고 뭐 블라블라. 게다가 면허증공증은 무슨 내가 사는 곳이 WA 웨스턴 오스트레이일리아라서 관할 지역인 캔버라 한국 대사관에서 받아야 한다나 뭐하나 아주 짜증나는 말만 하고. 그래서 일단 택배 봉투살겸 근처 우체국으로 가야만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 물어물어 포스트 오피스로 가서 봉투를 샀다. 

 그리고 돌아가 다시 여권 접수. 전자여권으로 바뀐터라 지문인식 하고 여권신청비 내고 뭐하고 하니 금방 처리되었다. 2주 정도 걸려서 여권이 올거라고 했는데 나 같은 경우엔 가기 전에 DHL 전자여권 배송서비스를 신청놓은터라 아마 더 빨리 올지도.  잠깐 여권 신청 관련 정보를 올리자면 다음과 같다.

 [ Info] 여권 신청, 발급, 배송
  내가 여권을 신청하면, 영사관이나 대사관에서 서류를 한국 외무부로 전산망을 이용해 보낸다. 그럼 한국 외무부에서 여권을 만들고 그 여권을 호주로 보내고, 그 여권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내가 신청한 주소로 배송한다.  내가 DHL 전자여권 배송서비스를 신청했다느 것은 한국 외무부에서 내 여권을 호주로 보낼때 애용하는 것. 즉 DHL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호주로 여권이 오는 기간이 길 것이고, 나 처럼 DHL을 신청해놓고 그 신청번호를 여권 신청시 제출하면 아주 빠르게 특급 배송으로 호주로 내 여권이 배송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우체국가서 택배 봉투 사서 신청 할때 제출하는 것은 이제 호주에 도착한 여권을 다시 내가 사는 현 거주지 혹은 신청한 주소로 배송할때 그 택배 봉투를 이용해 보내는 것이다. 

 전자여권이라 본인이 직접 가야지만 신청가능하고, 내가 좀 헷갈렸던게 캔버라의 대사관과 시드니의 영사관이 각 지역 관할을 정해놓고 업무처리를 하는데 난 WA  거주라 원래 관할인 캔버라로 가야만 했는데 그러면 시간과 돈이 엄청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여권은 영사관에서도 신청 가능해서 신청할수 있었다. 혹시 호주내에서 여권 재발급 관련 궁금 사항은 댓글로 언제나 물어보심을 ...

 다시 본론으로. 



 여권 신청까지 마무리하고 영사관 밖으로 나온 나는, 드디어 시드니의 오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남은건 공항가기전까지 시드니를 즐기고 퍼스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 뭘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난 일단 시티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뭐 할까 고민했다고 하지만, 머리속에서는 딱 한곳 밖에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 사진 설명 : 모노레일도 있는 미래도시 풍의 시드니. 좀 간지 쩜 ]

 그 곳은 다름 아닌 그 곳.
 카
 지
 노

 아...쓰발... 어제 잠깐 돈맛을 보다 끊겨서 그런지 뭔가 나를 자꾸 카지노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급류에 휩쌓인 나무토막 마냥 난 병신처럼 제발로 점점 그 지옥 구덩이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달링하버. 이제 카지노에 거의 근접 상태. 

 가면서도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발걸음은 계속 카지노로 향해가고 있었다. 잠시 달링하버에 멈춰서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 잡아보지만 정말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자꾸 머리속으로 명작 만화 " 도박묵시록 카이지" 를 떠올리며 도박에 빠지면 어떻게 된다는걸 떠올려보지만 그래도 역부족.

 카지노의 명대사.



 " 이 세상은 이용하는 측과 이용당하는 측 그 두 종류밖에 없는거야 "라는 명대사를 떠올리며 내 마음을 붙잡을려고 노력하며. 돈을 벌려면 카지노를 만들어야지 카지노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생각뿐 몸은 이미 카지노에 거의 다달았다. 


 기왕 이렇게 된거 아주 재밌게 한판 하자. 이제 완벽한 합리화의 길에 들어섰고, 
 짐을 카운터에 맡기고 본격적으로 도박 시작.

 어제 물 오르던 블랙잭을 할까 생각하다가도 역시나 또 룰렛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아주 신나게 해보자는 생각에 500불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시작.

 10분도 안되서 500불을 훌러덩 다 잃어버렸다.
 
 500불이란 돈은 나에게 무감각.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또 돈을 집어넣는다. 30분도 안되어 룰렛 머신에다가 무려 1300불 정도를 꼴아박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바로 카이지의 그 심정이렸다.
 오늘 룰렛 운빨은 정말 아닌 듯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블랙잭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돈을 미친듯이 따기 시작했다. 아 씨발 그래.. 진작에 블랙잭을 했어야지.


 원금 회복을 미친듯이 하던 난 또 정신 못차리고 다시 룰렛을 하러 간다. 정말 미친놈 마냥 잃을걸 알면서도.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마냥 룰렛 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또 천불 넘게 훌쩍 날려먹었다.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잃었다. 

 하하하...

 이미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일하고 있잖아. 이까짓거 한 주일하면 들어오는 돈인데 한번 달리자 싶은 마음에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난 이내 카지노 안에 있는 ATM머신으로 향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ATM한도는 하루에 1000불. 난 1000불을 다 뽑았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다시 카지노 입구로 들어섰다. 그 곳이 지옥인지도 모른채.

 이제 정말 잃으면 끝이란 생각에 룰렛쪽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고 블랙잭 테이블로 들어섰고, 다시 게임 시작.
 잃고 따고 지루한 반복이 계속 되었다.

 평일 대낮이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게 아닌터라 혼자 테이블에 앉아 딜러와 일대일을 하고 있다보니 기분이 영 깨름칙 했다. 딜러새끼가 날 비웃는듯 느낌. 아...... 

 좀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테이블을 바꿔가면서 게임하길 언 한시간 여가 흘렀을까 돈은 많이 줄어있었다. 점점 짜증과 함께 암담함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나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난 드디어 승부수를 던졌다. 에라 모르겠단 심정으로 남은 돈을 다 올인. 

 거짓말처럼 블랙잭이 나오면서 다시 원금을 회복했다. 

 대박

 이 때 정신 차리고 나왔어야만 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이게 마치 승리로 향하는 첫 걸음인 마냥 들떠서 베팅금액을 올려서 게임을 시작했다.
 역시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냉정함을 잃고 페이스를 잃은 도박꾼의 말로가 무엇인지 또렷히 보여주는 것 마냥. 어느새 돈을 다 잃었다고 인지도 하지 못한채 정말 쭉 빨려 다 털려버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인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탈하게 테이블에 그냥 앉아있다가, 너무 비참하게 보일것 같아.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카지노 밖으로 향해 걸어나오는데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씨부랄 입구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내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카지노안은 여전히 흥겹게 게임하는 사람들로 가득. 나만 병신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신 차리고 밖으로 나와 담배한대를 물고 내가 지금 무슨짓을 했는지 생각해봤다. 오늘 내가 잃은 돈이면 2주는 쌔빠지게 일해야 되는 돈인데 이렇게 병신처럼 한순간에 날려먹다니.

 내 자신의 한심함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서 지갑을 펼쳐보았다. 수 중에 있는 돈은 불과 30불도 채 되지 않았다. 시드니 시티에서 공항까지 가는 공항철도를 끊을 15불 돈을 제외하면 돈은 거의 바닥. 아직 비행기를 타러 가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다.

 연고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시드니. 가진건 돈 몇푼.
 시드니에게 완전히 패배했다.
 
 씨발.
 정말 빡쳤지만 내 자신의 한심함이 더 짜증 났다.
 시티로 향하는 다리 위에서 잠깐 주저 앉아 담배한대를 폈다.
 
 저 멀리 고층빌딩들이 보였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간판도 보였다.
 날 비웃는것 같았다.

 "병신아 돈은 그렇게 버는게 아냐, 너같은놈들 등쳐먹는거지 " 라고 나에게 말하는것 같았다.
 
 이런걸 모르고 있던 내가 아닌데 나도 병신처럼 이렇게 카지노가서 돈이나 날리다니 그것도 재미로 간것도 아니고 돈 좀 만져보겠다고 이 지랄을 해대다니. 너무 짜증이 몰려왔다. 짜증이 몰려오다보니 이제 점점 합리화를 하다못해 이 모든 탓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고 싶어졌다. 당시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던 애플을 떠올리며

 " 그래 애플. 애플만 아니었으면, 내가 너무 돈에 쪼들리다보니 이렇게 카지노 생각 하게 하고 말이야 " 라고 정말 한심한 생각을 품으며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면 할 수록 이 병신같은 기분은 없어지기는 커녕 더욱 커져만 갔다. 아 썅. 다리에서 확 뛰어내려볼까 하다가 돈 이 몇푼에 그런 병신짓을 하기엔 너무 한심했고. 담배만 계속 펴대며 다리에 서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래도 이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는 그래도 애플 뿐이었다.
 애플에게 전화를 걸어. 이 모든 사태를 말하리라.

 애플에게 전화를 걸어 카지노에서 돈날린 일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내가 너무나 짜증나있던 상태라 나를 잘 아는 애플은 따뜻한 말로 나를 감쌌다. 아... 
 그래 이런 애플을 난... 아.. 너무 개같은 내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모든걸 다 털어놓고 애플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났더니 기운이 났다. 그래 지금 당장 돈 한푼 없지만 그래 어차피 퍼스로 돌아가면 잡도 있고, 오늘 잃은 돈쯤이야 금새 벌고 (물론 당시 너무나 힘든 시절이라 그 돈을 세이브 하긴 힘든 상황이었지만..) 뭐 괜찮아 지겠지. 라고 생각을 하고 기운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에 핫도그 조금 먹은후로 아무것도 안먹은지라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또 배는 고프군.

 


 그냥 별생각없이 무작정 걸었다. 시간 때우기 용이었다. 
 차라리 시드니 타워나 한번 올라갈껄, 다른데가서 맛난거나 좀 먹어볼껄,
 스트라스 필든지 뭔지 가서 돼지국밥이나 한그릇 먹을껄 하는 수 많은 후회감이 들은들. 이미 늦은 상황.
 
 그냥 발걸음을 계속 옮기고 또 옮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차이나타운. 돈도 쥐뿔도 없어서 뭘 사고 싶어도 못사고, 먹고 싶어도 못먹는 상황에서 들어간 차이나타운. 돌아다니다가 어느 건물안에 IGA에서 음료수 페트병 하나를 사고 남은 돈은 차비빼고 10불도 되지 않았다. 이걸로 뭐나 사먹겠나 싶은 생각에 배고픔에 음료수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어떤 마켓에 들렸을때 그 곳에 푸드코드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박. 중국음식을 팔고 있던 한 코너의 음식가격을 봤는데 완전 쌌다. 대박. 대박.

 이거다 싶어서 주문해서 먹는데. 양까지 엄청 많았다.

 갑자기 대륙의 정이 떠올랐다. 그래 중국 씨바... 너네 밖에 없다.
 음식 하나는 정말 니네가 짱이다. 음식 아까운줄 모르는 너네의 그 정신. 아.. 갑자기 중국여행때가 떠오르며
 대륙의 힘이 떠올랐다. 

 스프며 이것저것 푸짐. 밥 양도 많았고 고기도 많았고 이렇게 푸짐한데 맛도 있고 가격까지 싼..
 아... 


 밥을 먹으면서 점점 기운이 되 살아났다. 그래 카지노에 몇만불씩 꼬는 놈들도 수두룩 한데 난 고작 몇천불 잃었다고 이러면 안되지. 내 인생에서 몇천불 꼴아박고 카지노 다시는 안가게 되었다면 그걸로 오히려 싼 돈으로 인생수업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자. 라며 위안을 삼았다.  물론 당시엔 이 생각을 하면서 기분을 추스렸지만 사실. -_-;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얘기해보자면 뭐 그닥... 카지노를 끊지는 못했고 꼬박꼬박 은행에 적금 붓는 기분으로 카지노에다가 돈을 저축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갑자기 피가 꺼꾸로 솟는 기분이다. 아..카지노나 가야지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그렇게 위안을 삼고 밥을 다 먹고 정말 차이나 타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밖으로 나왔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역이 있었다. 요기서 대충 공항가는 공항철도 타고 공항이나 일찍 가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 일도 없었지만 더 이 곳 시드니 시티에서 있어봤자 기분만 안좋아질것 같아서 공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밥까지 사먹은터라 정말 수중에 돈은 딱 공항철도 티켓 15불 뿐.

 개같은 현실

 역으로 향해 걸었고, 티켓 파는 곳에서  조낸 비싼 공항철도 티켓 15불짜리를 샀다. 
 이제 수중에 내 돈은 0.

 허탈.

 

 공항에 몇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터라. 그냥 씁쓸.
 공항 밖에서 담배만 주구장창 피며 시간을 때우는데 아이팟 터치 가져간거 해킹풀려서 지금 벽돌상태고 아주 기분 꿉꿉. 정말 이렇게 시드니에게 완전 쥐어터지고 떠나는구나 싶었다.

 어제는 갈매기떼들한테 조낸 후들겨 맞고 오늘은 카지노에서 후들겨 맞고. 이 비통함을 어디에서 푸는가.
 내 언젠가 시드니를 무릎 꿇게 만드리라 다짐해봤지만. 
 현실은 시궁창.

 공항에 BMW광고판 만이... 날 약올리듯 눈에 들어왔다.
 " 니 평생 BMW 탈수 있나 봐라 " 라고 비웃는듯 했다.. 아 ...약올라.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비행시간이 다가왔다. 보딩패스를 발급 받고 비행기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 이제 다시 나의 집 퍼스로 향하는구나.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곯아 떨어진 난, 어느새 깨어보니 퍼스 도착.
 익숙한 풍경. 퍼스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니 왜이리 반가운지. 바깥으로 나와보니 시골 공항같은 퍼스 국내선 공항이 날 반겨주었고. 담배 한대 피며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려 했다.



 안그래도 공항으로 픽업 나와달라고 윌(W)에게 부탁해둔 터라 윌이 차를 몰고 공항으로 나왔다. 
 반가웠다.

 시드니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썰 푸는데 윌이 깜짝 놀라는 애기를 한다. 여자친구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것.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호주 생활을 함께 시작한 녀석인데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기분이 뭉클.
 
 시드니와는 다르게 너무나 한적한 밤도로의 퍼스를 달려 빅토리아 파크에 도착했다. 집 앞에 날 내려준 윌과 인사를 나누고 조만간 환송회를 하자고 얘기를 나누곤 난 집으로 들어갔다. 애플이 날 반긴다.

 카지노에서 돈날린것에 대한 어떤 얘기도 묻지 않는다.
 
 정말 퍼스가 그 며칠 사이에 너무나 그리웠는지. 가슴만 살짝 뭉클 했던 밤이었다. 

[ 후기 ] 
 이제 자주 업데이트 좀 하자고 다짐해보지만 이제는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올리고 싶어도 못올리는 상황이네요. 하지만 그렇게 길게 끌고 끌었던 시드니 편이 끝난관계로 앞으로 내용진행이 좀 빠르게 진행될것 같네요. 사실 시드니편이후로는 큰 사건이 없고 다 소소한 생활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아마 사진은 한장도 없이 얘기로만 포스팅이 진행될것이기에 빠른 내용 전개가 가능 할 것 같네요.  정말 이번달 미친듯이 업데이트 할 예정이니 즐겨주시길 ㅎㅎㅎ

 덧글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푸핫.... 무플이 악플이니 많은 덧글 부탁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