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 홀리데이] 20. 폴이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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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폴이 떠나던 날
폴.
호주 생활에 있어 절대 잊혀지지 않을 내 친구.
호주 영어 인사인 G'day mate(그다이 마이트)를 완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 흉내내기도 힘든 "게에에에에닷이 마잇"을 쓰는가 하면 과도한 꺾기 발음으로 "why not"이란 말을 다른 외국인들에게 조차 유행어처럼 쓰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남자. 흔히 한국에서도 게중에 웃긴 친구의 유행어나 자주 쓰는 말을 주위 사람이 다 같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는 영어로 유행어를 만들어 그걸 한국사람 뿐 아니라 외국사람들도 쓰게 만든 친구다.
맨 처음 그랜다로우에 놀러 가기 전부터 윌로부터 정말 웃긴 사람이 한명있다고 나랑 잘 맞을꺼라고 얘기를 해줘서 너무 보고 싶었는데 그랜다로우에 가서 그렇게 처음 만난 폴. 80년대 영화에서 튀어나온듯한 독특한 머리스타일부터 독특한 말투. 재밌는 이야기까지. 특히 술을 좋아하는 것 까지 모든게 너무 잘맞고 좋았던 친구.
폴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웃긴 얘기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마이 백 이야기"
폴이 브리즈번에 있을 때, 번 돈으로 만불짜리 차를 샀다. 어느날 밤에 차를 타고 운전하고 가다가 사고로 도로 옆 도랑으로 빠져 차가 데굴데굴 굴러서 가까스로 기어서 빠져나왔고, 사고가 난 걸 보고 달려온 많은 호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영화에서 처럼 불이 나고 차가 펑 하고 터졌다.
순간 폴의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으니 차안에 가방. 가방안에 여권이며 지갑이며 이것 저것 다 있었던 것이었다. 폴은 소리를 치며 " 마이 빽(bag)!!!!!!!!!!!! " 이라고 외치며 땅바닥에 주저 앉았는데, 순간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폴의 등과 허리를 만지며 " 왜 니 빽(back)이 왜! "라며 앰뷸란스를 불러 폴을 태웠는데 차마 그 빽이 그 빽이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민망하게도 차가 터지는 사고에서도 멀쩡한 폴은 앰뷸란스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가는데 그 와중에도 머리속으로 " 호주 병원비 비싼데...큰일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웃긴 스토리였다. 실제로 폴에게 들을 때 정말 배꼽을 잡았었다. 이렇게 즐거웠던 폴과의 시간들.
어쨌든 그런 폴을 이 곳 그랜다로우에 와서 만나고 참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배낭여행자 아니 이 곳 워킹홀리데이메이커들의 숙명이라면 숙명일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함께 계속 할 것만 같았던 폴 녀석이 브리즈번으로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떠나기 며칠전부터 조금 씩 짐정리를 시작하던 녀석의 모습이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어느덧 떠나기 전날, 폴의 환송을 위해 파티가 시작 되었다.
많은 이들이 모여 폴의 떠남을 아쉬워하면 파티를 하는데 우울하게 또 집안에서 썩고 있을 전에 살던 쉐어메이트들인 엑스(H)와 YS녀석들을 초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언제나 처럼의 술자리와 별 차이는 없지만 참으로 아쉬움이 다가오던 순간 이었다.
모든 이들을 유쾌하게 만들고, 즐겁게 만들었던 폴. 어쨌든 그런 폴의 떠남이 아쉽기만 한 파티였다.
파티가 끝나고 전날의 흔적이 여전히 뒤덮고 있는 이른 아침.
폴이 떠나는 날이다. 물론 밤에 떠나기 때문에 여전히 가기 전까지 또 술을 마실꺼란 예감을 하지만 일단 전날의 흔적들을 치워야 했기에 여느때처럼 혼자 부지런을 떨며 정리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권이나 우리집에서 잠든 다른 애들에게 얘기를 들으니 어제 밤에 내가 자로 올라가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제니 누나와 폴2가 대판 싸웠다는 거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기타에 애정이 많은 폴2가 이대로는 기타모임이 안된다며 기타모임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얘기하는데 (그간 폴2는 기타모임에서 남녀가 좀 얽히는 문제가 보기에 안좋았던 것 같다) 제니누나가 맞장구 치자, 누나는 그런말 할 자격 없다며 술김에 비꼰게 좀 커진 것이었다. 암튼 간에 전날의 파티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북적 해진 집.
이것 저것 브리즈번으로 부칠 짐들이나 다른 것때문에 바쁜 폴. 폴의 짐들이 거실을 채웠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다시 또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떠날 폴이었기에 술은 간단히.
술을 마시며 폴이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 가는 길은 신이 차로 태워다 주기로 했는데 정말 많은 이들이 길에 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이 녀석이 사람들한테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약 이틀간에 걸친 폴의 배웅파티. 유쾌한 폴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그랜다로우의 나날들. 그리고 이제 이 유닛들에서 유일한 (이제는 권과 함께하지만) 한국인이 될 나로서는 왠지 홀로서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폴은 모두의 뜨거운 환송속에서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안녕! 폴